소원을 비는 기도는
우리가 소원하고 기도했던 것들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병원을 차리고 헌금을 잘 내는 신도가 있다. 그 병원에 가서 “성업을 이루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한다면 과연 어떤 의미의 기도를 한것인가? 병자가 많이 생겨야 병원이 잘되는 것이니, 그 근처에 병자가 많이 생기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인차를 사 놓고 사업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많이 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장례식장 주인이 사업이 잘되게해 달라고 기도하면 어떤 기도를 한 것일까? 그 지역에서 사람이많이 죽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사업을 하는 사업장에 가서도 목회자는 무조건 기도를 해 준다. 사채업자도 성업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잘못된 권력자 앞에서도 그 일이 형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헌금만 많이 낸다면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무조건 축복을 바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 오늘의 목회자의 현실이다. 하나님이 들어주시든지 안 들어주시든지 관계가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성경 구절을 섞어 가면서 그럴 듯하게 기도하여 그 말발에 감동한 만큼 헌금을 내도록 유도하며, 헌금이 많이 걷히면 능력 있는 지도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가르쳐 주셨을까?
아온 나날이자 오늘의 기독교의 현주소다.
이렇게 의미 없는 기도들을 허구한 날 한 것이 내가 목회자로서 살예를 든다면 회사에서 한 명의 신입사원을 뽑는데 믿음이 좋은 두 명의 청년이 동시에 지원했다.
둘 다 나에게 기도를 요청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기도를 했을까?
두 명 모두에게 각각 “이 청년이 입사하게 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를 하고 감사헌금을 받았다. 그리곤 둘 중에 한 명이 떨어지면 그청년의 믿음이 약해서 떨어졌다며 그 청년의 탓으로 돌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 불가능한 기도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래도 교인들은 참으로 단순하다.
목회자가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목회자 탓이 아닌가?
그러나 그 신도의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만 하면 만사 오케이다.
목회자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린다.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목회하기가 참으로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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