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참극, 언제까지 되풀이만 할 건가

편집국 / 기사승인 : 2025-11-28 15: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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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전공의들의 복귀로 의·정 갈등이 봉합됐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뺑뺑이’는 여전히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부산에서 경련 증세를 보인 고등학생이 응급실을 찾지 못한 채 구급차 안에서 숨진 사건은 한국 의료시스템의 취약한 현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긴박한 당시 119구급대가 무려 14차례에 걸쳐 병원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물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병원들은 ‘소아 진료 불가’ 등을 이유로 거부했고, 일부 병원은 환자 심정지 후에도 ‘소아 심정지 불가’라는 이유로 환자를 받지 않았다. 살릴 수 있는 소중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우리 사회가 구급대원이 전화를 10통, 20통 돌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수용 불가’ 뿐인 현실은 결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동안 구급대원이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 위해 전화를 20통 이상 걸었던 사례가 전국에서 1,300건이 넘는다. 이들 10명 중 7명은 대부분 사망 확률이 높은 중증 응급환자였다 게 더 큰 문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실이 최근 한 조사기관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8명꼴로 응급의료기관 수용 불가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를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77%가 지역의사제에 찬성했다. 일본·미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이미 유사한 제도를 시행 중이라는 점에서 제도에 대한 기대감이 결단코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응급환자가 병원 간 이송 과정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이 나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응급환자 진료체계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지난 11월 4일 대표 발의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국민이 응급상황에서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응급의료기관 등과 응급의료종사자의 역할 및 권리·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실 진료 및 최종 치료 인력의 부족, 응급의료기관의 불분명한 진료 기능, 단절적인 이송·전원체계, 응급의료진의 의료사고에 대한 큰 부담 등으로 인해 ‘응급 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특히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8조의2(수용능력 확인 등) 제1항은 “응급환자 등을 이송하는 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송하고자 하는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능력을 확인하고 응급환자의 상태와 이송 중 응급처치의 내용 등을 미리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어 구급대원은 응급실에 일일이 전화 통화를 해서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에 힘을 실었다. 문제 해결 방안으로 ‘응급실 중증 환자 즉시 수용 의무 규정 강화’가 29.5%로 가장 많이 나왔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반면 의료계는 “오히려 환자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라며 반대 주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응급환자가 제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일은 더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제도 손질만으로도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간다. 정치권이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다. 의료계도 대안 없이 반대만 하지 말고 법안 마련에 협조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와 보건복지부, 소방청, 의료계가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만 할 때다.

이처럼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 런’이라는 말이 더는 낯설지 않다. 외과, 신경과, 소아과, 산부인과처럼 힘들고 수익이 적은 진료과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의료 인력 불균형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그 피해는 결국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추진 했지만, 매번 의료계의 반발로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도 코로나19 시기 증원 계획을 포기했고, 윤석열 정부 역시 큰 폭 증원을 시도했지만 끝내 물러났다. 의료 현장 혼란만 남았고, 이제 어떤 정부도 쉽사리 정원을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만 남았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지역의사제’다.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는 조건으로 교육·주거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의료계는 10년 의무 복무와 근무지 제한 문제를 주장하지만, 국민 여론도 도입 찬성이 77%로 높다. 국회도 법안을 빠르게 논의 중이어서, 빠르면 2027학년도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문제는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으로 맞서 온 의료계의 직역(職役) 이기주의가 쳇바퀴 돌듯 지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1월 20일 “지역의사제 도입과 성분명 처방 허용 등에 반대한다.”라면서 “(의사)면허와 자격의 영역을 무시하는 부적절한 행위가 이뤄지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겠다.”라고 또 기득권 논리만을 앞세웠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는 11월 16일에도 전국의사대표자궐기대회를 열고 정부가 이를 강행하는 경우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1년 6개월이나 끌었던 의·정 갈등이 끝난 지 불과 두 달 만에 또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의료진 부족이 특정 환자의 진료·입원·수용 불가로 이어진 것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살얼음판’ 응급실 상황으로 환자들만 고통을 당하는 셈이기 때문이어서 안타깝다 못해 원망스러울 지경에 이르고 있다.

물론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가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지역의사제가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없다. 근무 환경 개선과 필수 진료과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같은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의료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다. 생명 앞에서 어떤 이해관계도 우선할 수 없다. 정부와 의료계, 국회는 이번 비극을 계기로 실질적인 해법 마련에 나서야만 한다. 더구나 환자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결단코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의료계는 지역·필수 의료 강화를 외치면서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설립을 반대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특히 의료계는 여·야 합의로 지난 10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응급실 뺑뺑이 방지법’에 대해서도 “의료 현장을 무시한 법안”이라며 비판하며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때 국민 건강을 책임졌던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도 의료계의 반발로 환자들의 편의성과 의료 접근성을 높이려는 취지가 퇴색하긴 마찬가지다. 진료 범위가 초진에서 재진까지 확대된 것은 다행이지만 지역과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한정되고 의약품 배송과 의약품 도매업은 아예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문 의료 인력 부족이다. 올해 국립대 병원 교수 217명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직서를 낸 교수 10명 중 4명은 필수 의료로 분류되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교수였다. 지난 11월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전국 10개 국립대 병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사직한 교수는 217명이다. 이 중 39.2%인 85명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필수 진료과목이었다. 이처럼 교수들이 빠져나가고 있지만 채용은 당초 계획보다 더딘 상황이다. 10개 국립대 병원에서는 올해 상반기 806명을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냈지만 정작 채용된 인원은 46.2%인 372명에 그쳤다.

한편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않고 의대 졸업 후 곧바로 개원가로 나가는 일반의(GP)의 비중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피부·미용 클리닉으로 향한다. 2024년 일반의가 신규 개원한 의원급 의료기관은 759곳으로 최근 5년 중 가장 많았다. 특히 2024년 1분기와 3분기 사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의 일반의 채용이 256% 증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일반의 신규 개설 의원급 의료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7월 기준 일반의가 신규 개설한 의원급 의료기관 129곳 중 80.6%인 104곳이 진료과목으로 피부과를 택했다.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으로 쏠리는 현상도 심각해 보인다.

지난 24일(현지 시각)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Le Monde)’와 ‘퓌블릭세나(Public Sénat)’에 의하면 프랑스 상원은 미용 의료 시장의 팽창을 억제하고 의사들의 필수 의료 이탈을 막기 위한 법안을 의결했다. 앞으로 프랑스에서 의사가 피부·미용 진료를 하려면 5년간 지역보건청(ARS)의 인허가 대상이 되고 의사협회의 승인을 거쳐야 가능하다. 의대를 졸업했다고 바로 미용 시장에 뛰어들 수 없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일정 기간 환자를 돌본 ‘임상 경험’을 증명해야만 미용 시술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은 현행 의료법상 의사 면허만 있으면 전공과 상관없이 누구나 보톡스, 필러, 레이저 시술을 할 수 있다. 바이털(생명)을 다루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수련을 받지 않아도 미용 시장에서 월 1,000만 원 이상의 세후 소득(NET)을 올리는 게 가능한 구조다. 2024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비급여 진료 비중이 높은 피부과·성형외과 의원의 연평균 소득은 필수 의료 과목 의사들을 크게 웃돈다. 위험은 없고 보상은 큰 시장이 널려있는데 힘든 수련 과정을 거쳐 소송 위험이 큰 필수 의료 현장에 남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시사 주간 ‘타임(Time)’은 지난해 2월 22일(한국 시각) 자 보도에서 한국의 수련의와 전공의 수천 명이 사직서를 제출한 이유로 ‘적은 의사 수’와 ‘높은 연봉’을 꼽기도 했다.

의료계는 그동안 의약분업, 의대 정원 증원 등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마다 직역의 이익을 앞세우며 집단행동으로 맞서 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의사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의료계가 우려하는 대목도 수긍이 안 가는 건 아니다. 지역 정주 여건과 의료 인프라 개선이 먼저라는 지적도 일응(一應) 이치가 맞다. 지역의 지도전문의를 확충하고 핵심 수련병원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환자를 중심에 두지 않는 의료체계, 그리고 문제 해결보다 이해관계 수호와 보전에 앞장서는 의료계의 오랜 구조적 문제가 만든 참극 앞에서 이런 이유가 결단코 제도 도입 반대의 명분은 될 수 없다. 수도권 원정 진료와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는 황급(遑急)한 상황이다. 의료계의 전향적(轉向的)인 자세가 절실하다. 하지만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것은 당연히 무책임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환자를 볼모로 잡고 집단행동에 나서는 행태는 그 누구로부터도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국민 눈에는 이런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집과 독선 그리고 몽니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어떤 직역의 이해관계보다도 우위에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의료계는 인술(仁術)의 신성한 책무를 잃지 말고 직역 이기주의와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회적 책임에 충실히 임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더 이상 치둔(癡鈍)의 우(愚)로 국민의 원망과 분노를 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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